본문 바로가기

쾌_재미

쾌락의 종류

[요약내용]

● 쾌의 종류 - 쾌를 얻는 감각에 의한 분류

● 쾌락의 종류

지금 다루는 즐거움, 쾌,락의 문제는 전체적으로 행복론의 총론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그 희망의 한 분야로서 다루는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의 문제는 그래서 감각- 인식 - 느낌의 측면에서 주로 접근하게 된다.

우선 감각의 문제를 생리적인 문제로 접근하면
감각의 역치와 최대 자극의 문제 [ 즉 감각할 수 있는 범위의 자극 ] 그리고 그 외의 자극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또 감각할 수 있는 범위에서의 매우 다양한 자극들이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그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 all or nothing 법칙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실무율이라고 한다. 실무율이란 생소한 단어인데,

반응하면 끝까지 최대로 반응하고, 안하면 안하는 방식으로 우리 각 근육과 신경은 반응하는 생리적 법칙을 의미한다.

여하튼 감각의 종류는 대단히 많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살아오면서, 그 동안에 다양한 감각을 해왔으리라고 보지만,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앞으로 새롭게 느끼게 될 감각의 종류도 상당히 많다.

사람들이 지금껏 수많은 감각을 자신이 느꼈다고 생각한다고 할 때,

그것이 전부는 아님은 다음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우선, 어떤 이가 아직 마취않고 수술 당하는 경험을 해 본적이 있을까.
팔을 뺐다 넣었다 해보았을까. 전기 자극을 받아보았을까.
뼈를 으스려 뜨린 상태로 걸어보았을까.

남자의 경우에는 출산의 고통을 겪어보았을까.

너무 고통쪽으로만 이야기해서 지나친 감이 있지만,

반대로 좋은 감각도 또 그런 식으로 나열할 수 있다.

그래서 좋은 쪽의 감각이든 나쁜 쪽의 감각이든 상당히 생각할 수 있는 종류가 다양하다.

아픔을 욱씬거림, 찢어지는 듯함, 뼈마디가 부서지는 듯함...이런 식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그것이 분류된다고 하기는 곤란하다.


또 즐거움을 산뜻하고 아늑한 즐거움, 엄청난 즐거움...이런 식으로 분류해나가기도 곤란하다.

여하튼 감각의 종류의 분류에서는 상당히 문제가 많다.


여하튼 즐거움과 고통의 문제에 대해 그 종류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우선은 이렇게
여러가지의 감각이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심지어 분류하기에 따라서는
걸어다닐 때 느끼는 감각을
평지를 걸을 때 느끼는 발의 감각, 등산할 때의 감각...등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등산할 때의 감각을
남산, 한라산, 지리산, 태백산, 이산 저산...그리고 새벽, 아침, 저녁, 눈올 때 등산시 느낌...

이런식으로 분류한다고 하면, 거의 무한히 나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감각의 종류가 이처럼 많고 다양한데,
이런 식으로 나열하며서 살피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여하튼 즐거움의 문제는 가장 기초적으로
감각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앞에서 본 감각범위만을 기초로 놓고 생각하면, 사실 너무 다양함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감각기관을 기준으로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기준으로 분류해 보는 것이
조금은 단순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눈으로는 색에 대한 감각을 얻는다.

그리고 무수한 색은 결국 3원소가 조합된 여러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서로 구별할 수 있는 색의 종류는 천만가지 이상을 넘는다고 한다.

한편 귀로는 소리를 얻는다.

소리도 진동 파장수 파형으로 분류하거나, 높낮이를 음계로 나타낼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 대하는 소리는 사람의 말소리나 노래나 음악소리 그리고 동물이 내는 소리, 각종 소음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하다.

한편, 향도 맛도 촉감도 사정이 비슷하다.

향기의 기본 요소의 분류는 좀 애매한 감이 있다.

그저 좋은 냄새 나쁜 냄새 이 정도의 분류 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 같은데,
여하튼 이 향기의 종류도 사실 대단히 많고, 자세히 생각하면 단순하지 않다.

맛도 기본적으로는 단맛, 짠맛, 쓴맛, 신맛 이렇게 나누고 한국인은 여기에 매운 맛까지 추가하기도 하는데,

학자들은 매운 맛은 통증의 촉감에 속한다고 보기도 한다.

여하튼 이런 기본요소가 조합되어 현실에서 대하는 각종 맛은 또 천차만별이다.

한편 기본적 촉감의 요소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거칠거칠함 매끄러움, 뜨거움, 차가움, 아픔, 안아픔(?) 등을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역시 구체적인 촉감의 내용은 간지러움, 가려움, 찢어질 것 같은 통증, 쑤시는 듯한 통증...등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결국 각 감각들의 기본요소야 단순하게 말하더라도, 실제로 대하는 감각의 종류는 대단히 많고 다양하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이 우리가 대하는 현상 세계의 가장 기본적 바탕이 되는 내용들이다.

[요약내용]

● 쾌의 분류 - 느낌을 통한 분류

○ 느낌을 통한 분류

그런데 이런 다양한 감각들은 종국적으로는 좋음 나쁨 등의 느낌과 관련되게 된다.

이 좋고 나쁨의 느낌은 조금 더 복잡하게 아주 나쁜 내용, 조금 나쁜 내용, 이런 식을 정도를 나타내어

세분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좋은가 나쁜가, 아니면 둘 다 아닌가. 아니면 둘다 조금씩 섞여 있는가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각 구체적인 감각들은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좋다고 여기는가 나쁜다고 여기는가에 따라

그 의미를 최종적으로 얻게 된다.

따라서 앞에서 복잡하게 살핀 각각의 감각에 대한 분류나 나열은

결국 좋은 느낌, 나쁜 느낌,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또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느낌을

각기 주는 감각으로 나눌 수 있다.

각 감각은 결국 그런 느낌과 관련해야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소리를 예로 들면 수많은 다양한 소리가 있지만,

각 주체에게 의미있는 내용은

각각의 소리를 어떤 주체가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이는가에 보다 더 큰 의미 차이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물건을 딱 소리내며 내려 놓는데, 상대가 그 소리가 불쾌하게 느끼게되면,

왜 물건을 기분나쁘게 딱 하고 내려 놓는가 하며,

서로간에 시비가 시작되고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반대로 비슷한 딱 투탁, 또도독 소리를 통해 음악을 만들어가며,
즐거움을 주고 예술행위를 하며 수입을 엄청나게 벌어들이는 경우도 있다.

여하튼 즐거움의 문제는 이런 좋음과 나쁨의 느낌의 차이와 깊게 관련된다.

○ 쾌를 살피는 데 있어서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점이 있다.

우리는 사실은 많은 즐거움을 놓치면서 매우 둔감하게 산다는 점이다.

심지어 당연히 갖고 있는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면서, 산다.


약간 안타깝게 여길 문제이다.

어떤 경우라도 이런 상태를 생각할 수 있다.

앞에서 대략 살펴본 여러가지 고통과 즐거움을 놓고
하나의 상태를 생각해보자.

그렇게 한 상태를 놓고 생각하면 지금 어떤 고통과 어떤 즐거움이 그 상태에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크게 고통을 당하는 상태를 놓고 생각하면 그것이 없고 해소된 상태는 매우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지 가지 고통을 전제하고 그것이 없는 현재의 상태는 어떻게 보면
대단히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가지 가지 즐거움을 전제한 다음 그것과 대비해 보면또 앞과 반대로 평가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두 전제를 떠나면, 그 상태는 그저 그 상태일 뿐이다.

어떤 경우는 그저 무덤덤하고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로 지속될 수도 있다.

그런데 앞과 같이 다른 내용과 대비해보면 하나의 상태가 여러가지로 달리 평가되고 느껴질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지 않는 내용들은 사실 대부분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그래서 그것은 결국 그냥 싫고 나쁜 무서운 '━ ━ ━' 이거나
좋고 즐거운 +++ 이거나 등으로 모호하게 변해 버린다.

예를 들어 지금 졸리운 이 상태가
사실은 뼈가 부러지지 않은 상태여서 좋다거나,
다리가 끊어지지 않아서 좋은 상태라거나,
발가락이 절단되지 않아서 좋은 상태라거나,

누가 이렇게 계속 말한다고 해서
새록 새록 달리 느껴진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실 그 반대도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그런 식으로 다른 상황과 대조해 상상하면서

무언가가 얻어진다면 좋은데

그것은 지금이 다른 것과 비교하면 좋다거나 나쁘다는 평가이지,

그에 따라 어떤 새로운 감각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그런 비교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또 무덤덤하고 서로 별 차이없다.

한편 구체적 감각없이 이런 관념적 생각만으로,
계속 생활해 나가는 것은 사실 매우 곤란하다.

그러나 앞과 같은 비교를 통해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얻을 수 있는 좋음을 못 얻고, 얻지 않아도 될 나쁨을 얻는다면, 그것은 그 말 그대로 안 좋다.

또 반대로 말하면,

얻을 수 있는 좋음을 얻고, 얻지 않아도 될 나쁨을 얻지 않는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좋다.
그리고 그런 좋음도 매우 다양하게 얻고, 나쁨도 다양하게 얻지 않는다면, 더욱 좋다.

[요약내용]

● 쾌의 분류 -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얻는 구조에 따른 분류

한편
즐거움의 문제는 이들이 생리적 활동과 깊게 관련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즐거움은

어떤 생리적 기능이 잘 기능하지 않으면 건강을 해치게 되고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는 생리적 내용들과 많이 관련된다


인간이나 다른 생명이나 보통 먹고 섭취하는 활동, 배설활동, 노는 활동, 무언가의 작업, 쉬기, 잠자기에

대부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런데 이런 기능들은 미생물부터 여러 동물들과 같이 공통적으로 영위하는 기본적 활동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활동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가.

그리고 또 이들이 우리의 즐거움, 쾌, 락에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여러 가지 가지 즐거움을 또 이들과 관련시켜 분류해볼 수 있다.


특히 좋고 나쁨과의 관계하에
인간이 행하는 활동의 구조를 분류해보면,

논다-로 표현되는 형태가 매우 우수한 즐거움의 상태임을 생각할 수 있다.

오죽하면 불교에서 이상적인 상태로 생각하는 보살의 활동상태를 노닌다...유희한다라고 표현하겠는가.

사실 선한 일을 노닐면서 잘 한다는 상태는행복론에서 제시하는 삶의 목표 상태이기도 하다.

논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것은
인간이 행하는 활동의 구조를 대강 분류해보면

고통의 해소, 의무의 이행, 생리적 욕구의 이행, 교환적 욕구, 업무적 활동, 희망의 추구,
즐거움의 추구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상태는 결국 즐거움을 추구하며 노는 경우다.

이는 좋음을 추구하는 것이 모든 생명의 희망사항이라고 할 때,

좋음의 상태에서 더 좋은 상태를 향해 변화있게 나아가며 즐거움을 얻는 과정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른 유형들로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

○ 고통의 해소과정

우선 좋음 나쁨을 + '━' 로 표시해보면

'━ ━' 에서 ━ 나 0 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우선 생각할 수 있다.
이를 고통의 상태에서 그 고통의 해소를 바라고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금 다리가 부러져서 몹시 아프다.

이제 이 통증 ━ ━ 가 사라진 상태를 바라게 된다.

그래서 그 통증이 낫기를 바라며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병원에 가고, 진통제주사를 맞고 ━ 상태 정도에 머물면서 계속 치료해가고 낫게 된다.

그리고 '━ ━' 에서 ━ 나 사라지고 원래대로 0 의 상태를 회복한다.

이런 과정이다.

○ 의무의 이행

또 다른 상태로 다음도 생각할 수있다.

지금의 상태를 기준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더 큰 '━ ━' 나 '━' 등이 예상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그 예상되는 '━ ━'나 '━'의 상태를 피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 '━ ━'나 '━' 가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 ━' 나 '━' 가 없다는 사실을 얻을 때 만족을 얻게 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하는 행위
또는 많은 의무를 강요받고 이를 이행하는 상태 등이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우선 어떤 행위 때로는 그 자체가 '━'로 예상되는 행위들을 하게도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큰 '━ ━'를 받는다는 예견에 바탕을 둔다.

이런 예견은 어려운 정신작용이 아니다. 대부분의 동물들도 이런 판단에 기초하여 행위한다.

들판에서 사자가 나타날 때 소떼들이 도망을 가는 경우도 사실은 이런 과정이다.


한편 그런 행위를 함에 따라 단순히 '━ ━' 나 '━'가 해소되는 상태 뿐만 아니라. +의 상태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일단 예상되는 더 큰 '━ ━'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목적이고 행위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성취를 통해 +의 상태를 얻는 것은 예견된 '━ ━' 등이 없게 됨으로써 그 '━ ━' 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얻게 되는 경우가 보통이라고 본다.

○ 생리적 욕구의 이행
한편 또 다른 형태도 생리적 욕구를 추구하는 형태된다.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다.

우선 어떤 생리적 욕구가 실현되지 않는 상태에서 직접 '━'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이행하면 그 '━'가 해소되거나 +를 얻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서 어느 상황이 되면 배가 고픔을 느긴다. 그래서 '━'를 느낀다.

이제 밥을 먹는다. '━'가 해소되면서 +를 느낀다.

이런 경우들이다.

식욕, 성욕, 수면욕과 같은 대부분의 생리적 욕구를 이행하는 과정을 이런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 교환적 욕구

한편 교환적 형태를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일상적으로 행하는 일이나 생활과 많이 관련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구조다.

자신이 상대에게 무언가를 준다. 자신이 그런 일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상대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은 대신 그 댓가로 다른 좋은 것을 얻기 때문인 경우다.

이는 즉 자신은 상대에게 +를 주고 상대는 나에게 +를 준다.
자신이 상대에게 +를 주기위해 하는 일은 자신의 입장에서는 사실 '━' 로 느끼는 일이다.

그런데 , 그 일을 하는 것은 그런 자신의 희생 '━'가 상대가 주는 +로 보상받기 때문이고,

또 이 양자 간의 차이가 극대화되기를 바라면서 이를 추구하게 된다.

즉 상대로부터 얻는 +의 양은 키우고 자신이 치루는 '━'를 줄이고자 노력하게 된다.

○ 범죄적 교환형태

한편 범죄행위와 같은 경우도 있다.

이 경우도 앞 경우처럼 교환관계에 있지만 그 내용이 다르다.

우선 자신이 남으로부터 +를 얻고자 한다.

그런데 그 +를 얻기 위해 자신이 상대에게 +를 주면서 희생 ━를 치루는 교환관계는 아니다.
앞의 관계와는 달리, 자신은 상대에게 주는 +가 없다 오히려 ━를 준다.

또는 자신에게 +를 제공하지 않으면 더 큰 '━ ━'를 주겠다고 위협하고, '━ ━'를 주지 않는 것과 교환으로

상대로부터 +를 얻어낸다.


이런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상대는 ━를 받거나, '━ ━'를 준다는 위협을 받고 더 큰 '━ ━'를 피하기 위해 작은 '━ '의 희생을 치루는 형태가 된다.

그리고 이 경우는 넓게 보면 앞에서 살핀 의무의 이행과 같은 구조에 넣을 수 있다.

○ 변태적 형태

한편 +를 얻는 과정에서는 변태적 형태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를 추구하는 일반적인 형태와 그 구조가 매우 다르다는 의미이다.

그런 경우로는 남에게 ━를 주면서 그 자체로부터 +를 얻는 경우가 있다. (가학적변태)

또는 반대로 자신이 ━를 받고 그 ━가 해소되는 과정에서 +를 얻거나,

자신이 ━를 받는 과정에서 받는━의 반사면으로부터 +를 얻거나 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피학적변태)

또 아예 어떤 경우는 일반적으로 대부분 ━로 생각하는 것을 자신은 +로 생각하고 대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또 반대로 일반적으로 대부분 +로 생각하는 내용을 ━로 생각하고 대하는 경우도 변태적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들은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결과적인 +, ━ 만 놓고 살필 때는 큰 의미는 없게 된다.

○ 업무적 활동

업무적 활동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특정한 직업을 선택하고 그에 관련된 일정한 행위를 계속 반복적으로 행하는 경우다.

업무적활동이란, 앞에서 살핀 여러 형태를 기본적인 구조로 하여 출발하는 행위다.

다만 그 활동이 반복적으로 계속적으로 꾸준히 행해진다는 점에서 별도로 나열해보는 내용이다.

○ 희망의 추구,

한편 단순히 어떤 상태가 실현되면 +를 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그 +를 향해 나아가는 경우가 있다.

희망은 기본적으로 어떤 상태가 만일 주어지면 +를 얻을 텐데 라는 판단이 전제가 되어 출발한다.

예를 들어

돈이 있다면 좋을텐데,
내가 저 직장을 갖고 저 직위에 오르면 좋을텐데,
다른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리고, 어떤 상태를 마음대로 실현시키면 좋을텐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면 좋을텐데

등등의 많은 생각을 한다.

이는 결국 사람들 대부분이 원하는 돈, 권력, 명예 등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이 결국 다양한 희망의 내용이 된다.

그리고 이는 그것이 실현되면, +가 생긴다는 판단에서 무언가를 추구하고 행하는 관계다.

○ 즐거움의 추구

한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앞의 희망의 구조와 비슷하지만, 희망의 구조는 무엇이 얻어지면, +가 얻어진다는 판단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것이 얻어지지 않으면 반대로 ━가 되거나 0 이 된다는 판단을 대부분 전제로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부수적 판단 내용은 그 희망을 추구하는 이에게 마냥 +를 주지 못한다.

즉 실현과정에서 아직 희망이 성취되지 않는 상태에서 ━를 받게 된다.

또 희망이 실현되지 않으면 ━를 받게 되리라 생각하고 두려움을 갖는다.

또 희망이 실현되기를 집착하면서 안달을 내거나 초조하거나 긴장하게도 된다.

또 희망이 실현될까 아니면 실현되지 않을까 생각이 오가면서 +와 0 ━를 번갈아 오가는 불안 상태에 빠지게도 된다.

그래서 이런 상태는 희망을 쫒는 구조에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단점이다.

즐거움을 순수히 추구하는 경우란,

무언가를 해도 안해도 0 이거나 + 이지만,

그러나 그 무언가를 얻으면 +나 ++ 이기에
그래서 그것을 하는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그 희망이 성취되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무방하다. 좋다는 상태를 잃지 않는 경우를 의미한다.

대부분 가볍게 취미로써 행하는 행위의 경우에는 그것을 원하고 행하는 과정을 즐거워하고

또 뜻대로 성취하면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또 그것이 가벼운 취미의 상태일 때는 그 희망이 성취되지 않는다고 심하게 ━를 받지는 않는다.

결국 부담없이 즐겁게 행하는 상태가 된다.

외관은 같은 내용이더라도, 그것을 행하는 주체의 마음상태가 앞의 구조인가 뒤의 구조인가에 따라서,

희망의 추구와 즐거움의 추구는 구별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유형을 즐거움의 추구의 경우라고 구별해 표현해 본 것이다.

○ 한편 + 0 ━ 이란 요소를 놓고 살피면 앞에서 살핀 경우들 이외에도 이론상으로는 여러 가지 다른 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고려할 경우는 이론적으로 가능한 여러 유형 가운데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얻으려 하는 일반유형들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 를 받으며 더큰 ━ ━를 직접 향해서 나아가는 형태

등과 같은 여러 경우는 이론상 +, 0, ━가 조합되어 이뤄질 수 있는 여러 형태가운데 하나일 수는 있지만,

이들을 모두 굳이 나열해 살필 의미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앞에서 살핀 일반적인 여러 유형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얻으려 하는 일반유형들) 에서
그나마 가장 바람직한 관계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적인 입장에서만 판단한다면, 결국 즐거움의 추구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사회적인 규범적 입장까지 같이 고려하여 판단한다면,

사회적으로 좋고 선한 행위를

개인적으로 앞과 같은 즐거움의 추구 유형을 통해

잘 - 즐겁게 실현해가는 것을 가장 바람직하고 좋다고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일단 개인적인 입장 즉 즐거움의 문제만 집중해서 살피기로 한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하면, 여러 형태 가운데 즐거움의 추구 형태가 다른 형태보다 낫다.

그 이유는 +를 좋다고 보는 전제에서 앞과 내용의 구조가 +로만 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의 추구의 경우란,
어떤 내용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다 좋은데
그러나 하면 더 좋다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행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좋다는 것은

그런 즐거움의 추구의 형태가 외관적으로 희망하는 상태를 반드시 성취하게 되기 때문에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시합을 할 때 그렇게 임하면 반드시 좋은 놀라운 기록을 얻게 된다는 의미에서 좋다는 의미는아니다.

단지 그런 마음 상태를 갖고 임해 죽 나아가면,
즐거움의 측면에서는 어느 경우나 주관적으로 +를 얻게 되므로, 가장 바람직한 상태에 머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산을 오를 때

어떤 이는 오늘은 꼭 정상에 올라가야 하고 저녁 7시 이전까지는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산을 오른다고 하자.

또 어떤 이는 올라가도 좋고 안 올라가도 좋은데, 잘 놀다 오자. 이런 마음으로 산에 오른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 각 경우는 출발부터 끝까지 마음의 내용이나 외관의 모양새가 달라진다.

또 만일 이 둘 간에 산에 누가 먼저 오르는가 하는 시합이 벌어진다면,

이것만으로는 누가 승리를 할 지는 어느 쪽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여기서 어느 것이 낫고 못한가의 기준은

이 전 과정에서 어느 경우로 결과가 나오던지 누가 +를 고루고루 잘 얻어가지고 왔는가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기준에서는 뒤 쪽이 낫다고 본다.

한편, 일상생활에서 이런 즐거움을 추구하는 형태는

대부분 어떤 내용을 취미로서 부담없이 대하고 결과에 집착을 갖지 않고 행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외형적 모습 즉 외관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취미생활로 생각하는 내용도 구체적 개인에 따라서는 앞에서 살핀 여러 다른 형태로 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대부분 취미활동으로 생각하는 내용을

어떤 이는 의무적인 일로 생각하거나, 어떤 이는 고통의 해소과정으로 받아들여 행할 수도 있다.

또 반대로 일반적으로는 의무나 직업행위로 생각하는 일을,

어떤 이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로 생각하면서 행할 수도 있다.

그래서 즐거움의 추구란, 그 내용이 갖는 외형적 모습에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해 행하는 과정에서 한 주체가 갖는 마음안의 구조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요약내용]

● 쾌의 종류 - 쾌를 얻는 행위 유형에 의한 분류

○ 한편 이런 여러 유형과 함께, 즐거움의 문제를 살필 때는

관련된 여러 정신 신체적 활동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감각 - 느낌 - 감각 느낌 에 대한 인식 및관념- 그 관념의 기억, 재생, 연상, 말, 행위, 태도 - 분별, 판단, 평가

등의 종합적인 과정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이와 함께 쉰다- 잔다는 활동과 관련한 여러현상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자는 동안 꿈을 꾸면서 좋은 꿈을 꾼다거나 악몽을 꾸는 등의 문제도 살펴 볼 필요가 있고,

기타 특이한 정신 상태, 즉 명상, 최면 등과 관련한 문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약내용]

● 쾌를 통한 목표


이처럼 즐거움의 문제를 감각과 관련시키고

느낌과 관련시키고 기타 여러 인식이나 행위와 관련해 생각하다보면,

결국 어떤 것이 그런 즐거움을 오래 줄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신의 상태나 자신을 둘러싼 외부상태에 대해

아주 마음에 들고 좋은 내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몸도 상쾌하고 감각도 상쾌하고 경치도 좋고 그래서 기분도 좋게 느껴지는 상태를 하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하루 이틀 계속 지속해 느끼다 보면, 또 다른 문제를 만나게 된다.

지루하다. 무의미하다. 권태롭다. 물리고 질린다. 등과 같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변화를 바라고 또 그 변화가 여러 형태로 조화롭게 이뤄져

전체적으로 즐거움을 오래 주는 좋은 상태가 되기를 바라게 된다.

즉 한마디로 가지 가지 재료와 요소를 통해 종합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상태를 원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새로운 목표점을 발견하게 된다.

==> 그리고 점차 더 나은 상태를 계속 찾아가다 보면,

결국 자신의 주관적 개인적 범위의 좋음의 극대화를 넘어,

사회적 규범적 입장까지 같이 고려하여

사회적으로 선하고 가치있어 좋은 행위를

개인적으로 앞과 같은 즐거움의 추구 유형을 통해

잘 - 즐겁게 실현해가는 것을 가장 바람직하고 좋다고 보게 된다.

즉 선한 뜻의 실현을 지혜롭고 행복하게 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그것이 추구할 가장 좋은 목표가 되는 것은 다양한 측면에서 각 부분을 좋음으로만 채워 넣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목표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즐거움의 문제를 대해 행위해 나가야 하는가는

또 어렵다.

총론에서는 기본적으로 선악을 구분기준으로 삼아,

선하지만 자신이 실현하고자 선택하지 않은 부분,

악한 내용,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고, 가치가 없는 부분

선하면서 자신이 살아가면서 실현하고자 추구해나가는 부분으로

나누어 이 각각에

- 주어진 상태에서 장점을 보고 만족하고 즐거워하기(따라기뻐하기) [pass]

- 악한 내용의 단점을 보고 끊고 포기하기 [stop]

- 가치없음을 생각하여 관심을 끊고 가치 있는 일에 관심을 돌리고 전념하고, 무시하기 [turn]

- 선택된 선한 뜻을 즐겁게 잘 실현해나가기 [go]

이렇게 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pasturngo--가 그래서 수많은 즐거움을 주는 각 종목에 대해

자신의 행동방향의 대강을 결정하여 나가는 행위의 취사선택에 대한 이론적 모형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자신의 주관적 즐거움의 강도여부가 아니고 사회적 선악의 평가이고,

또 개인적으로는 여러 선한 내용들 가운데 자신이 집중 전념해 추구해나가기로 정한 선한 뜻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

위 방안은 그런 기본 바탕에서 다양한 측면에서 즐거움을 얻어 나갈 기본 방안을 제시한 것이 된다.

대강 이론 내용이 총론에서 제시한 일반적 방안을 즐거움의 문제와 접합시킨 내용의 대강이 된다.

다만 위 내용은 규범적 내용과 주관적 즐거움의 측면을 합친 것으로 이론상

양측면의 장점을 합쳐 제시한 것이지만,

그러나 대부분 사람이 행위하게 되는 기본적 원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당장 즐거움을 주는 것을

추구하고 쫒아 나간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즐거움을 얻을 종류가 세상에는 무한하고 인생은 짧으니,
살면서 이를 다 한번씩이라도 맛봐야 하지 않는가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 여러가지 즐거움을 주는 것들 가운데 자신이 미처 못누려 본 것들에 대해 아쉬어하는 경향을 갖기도 한다.

사실 그 때 그 때 즐거움을 주는 수없이 많은 종목을 추구하는 것은

마음만 번잡하고 소란하면서 하나하나 제 맛을 즐기지 못하기가 쉽다.


그렇다고 단조롭게 오직 하나만 하면서 평생 사는 것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추구하기로 한 선한 뜻을 중심으로 그 한 부분에만 계속 전념한다해도
집중 전념을 통하여 마음은 평온해질 수 있고,

그리고 그 일과 관련한 여러가지 사소한 변화를 통해서도,
삶에서 얻을 가치있는즐거움들은 충분하게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여하튼최종적으로 가장 좋은 상태를 얻는 '적절한 내용'이 무엇인가가 문제이다.
그것은 각 부분에서 어떤극단을 추구하는 경우에는 적절하게 얻어지지 않는 것으로 본다.

사실 즐거움의 종류만 무한한 것이 아니고, 고통의 종류도 그처럼 무한하다.

무엇이든 있는대로 다 맛보아야 한다면, 먼저 수많은 고통들을 나열해 놓고 이를 하나하나맛봐야 할 지도 모른다.


즐거움의 문제는 결국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즐거움을 얻는 구체적인 방안을 살피게 된다.

▩[ 디스크 ]▩ DISK: \G-added-b0\03\ghpt\ghpt-01071.htm

ж[ 웹 ]ж web:http://blog.paran.com/thegood007/44430504



'쾌_재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쾌락-004  (1) 2011.04.23
쾌락-003  (0) 2011.04.21
쾌락-002  (0) 2011.04.20
사람들의 행위의 동기  (0) 2011.04.17
오락-화투에 대해서  (0) 2007.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