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간관계

[output]-●가족간의 인간관계 문제


●가족간의 인간관계 문제 

이런 사례글을 보게 되었다. 
사례1  



형제의 부모가 다음과 같은 사연을 하소연 한다. 

“형이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자 

자기가 과거에 동생에게 

도움을 주었던 얘기를 하면서 

돈을 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동생은 형이 원하는 돈의 

일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섭섭했는지 

앞으로 만나지 말자고 해서 

동생은 이후 잘 찾아 오지 않습니다. 


형제끼리 사이가 나빠지고, 

그것 때문에 
서로 방문을 안 하는 걸 보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해결방안] 


 
● 인간관계에 대한 덕목을 정리한 표가 있어 일단 복사해 붙여 본다. 








하부인에 대한

관계

대등인에 대한

관계

상부인에 대한

관계

기본 관계

선(善)

성실

효도

충성

예의

절도

신의

믿음성

친밀함

덕있음

인자


[참고]
- 군림하지 않기를  권위를 내세우지 않기를

권력를 자의적으로 행사하지 않기를 

자신과의 욕구

관련성

건강

조력

생(生)

시간

동의

찬양

대범

겸손

받아들임

정(情)

지혜 지식

시범 소개 부탁등을 통한 정중한 정보 제공

질문 유도등을 통한

자존심 해치지 않는 정보제공

질문 유도 교화를 통한 정보제공

인격





---------------

-----------------

------------

-----------------

직업

이익

양보

이익



명예


공경

존중

인정

재우

인간관계





겸손

화목

참음

공평

신뢰

알아줌

사랑




따름

복종

순종

협조

포용 -엄격


 
자유


귀찮게 하지 않음

비간섭

비참견

자유 허용

타인에 대한 욕구

옳은 길의 제시

다수의 뜻의 제시

도덕적인 뜻의 제시

사회에 대한 욕구

현상에 대한 욕구


fr o:\G\G\03\ghpt\r2210.htm


위 표의 내용은 
자신이 각기 다른 이에 대해 
바라는 내용이 대략 위와 같다는 의미다. 

즉 자신이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하부인(대등인, 상부인 등)에 대해서는 
이러이러한 내용을 바라게 되고 
특히 구체적으로 자신의 건강, 시간, 쾌..등의 욕구와 관련해서는 
또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한 내용들을 상대에게 바란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실제로 각 사람들은 
사실 그러한 상대를 대하면서 
그런 내용을 바라고 요구하게 된다. 

심지어 그런 내용을 규범으로 내세워 강제하기도 한다.

즉 자신이 상대에게 바라는 내용을 
상대가 행하여야 마땅한 규범적 내용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윗사람이 자신에게 대하여 
인자할 것을 바라게 되면

그것을 곧 윗사람의 도덕적 의무로 규정하는 방식이다. 

즉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인자하게 대해야 한다." 

이렇게 각 상대에 대해 갖는 희망의 내용을 
규범적인 내용으로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과 불교 경전에 나오는 규범 원리는 
이와는 조금은 다르다. 

즉, 자신이 상대에 대해 어떤 A의 내용을 바란다면, 
그 A의 내용을 자신이 먼저 상대에 대해 그렇게 행하라는 것이 
성경이나 불교 경전에서 요구하는 규범 내용이 된다. 


그래서 위 내용의 표는 
곧 자신이 그런 관계에 있는 이에게 
그렇게 행하여 할 내용으로 바뀌게 된다. 


앞의 표에서 

자신은 자신의 하부인(아래사람)에게 
자신에게 성실하고 효도를 행하고 충성을 하는 등을 
바라고 요구하게 됨을 제시한다. 

이 경우 그것은 곧 
그런 상대에 대해 그런 내용을 할 것을 규범적으로 
요구하는 내용이 된다. 


그런데, 
성경과 불교 경전의 내용에 의하면, 
이런 각 경우 
자신이 그런 관계의 상대방에게 
그런 내용을 바라므로, 

자신이 그런 상대에게 그런 내용을 그렇게 
먼저 행하라는 내용으로 바뀌게 된다. 

즉 자신이 하부인에게 
자신에 대해 성실하게 대하고 효도를 행하고 충성을 행하길 바라므로, 
자신이 먼저 하부인에게 
성실하게 대하고 효도를 행하고 충성을 행하라는 
내용으로 된다. 

이런 요구를 상식적인 입장에서 생각하면 
약간 이상한 요구가 된다. 

즉, 효도나 충성의 개념은 

자식이 부모에게 행하거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행하는 내용으로 
관념되기 때문에 

이것을 거꾸로 반대로 적용하려니 
그렇게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에 담긴 실질을 가지고 살피면 
그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즉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효도를 받으려고 한다면, 
자식이 행하는 효도에 해당하는 그 실질 내용
즉 성실하게 상대를 위해 베풀고 살피고 뜻을 존중하고 실현시켜 주는 등의 행위를 
먼저 부모가 자식에게 행할 것을 요구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위 표는 
각 상대에게 자신이 바라게 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그런 상대에게 자신이 먼저 행해야 할 내용을 
나열한 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이 하부인에게 바라기를 

하부인이 자신에 대해서 

이익을 제공해주고, 
자신을 공경하고 
자신에게 대해서는 겸손한 태도를 갖추고 
자신을 따르고 복종하고 순종할 것을 바라고 
또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것등을 
바라는 것이라면, 


자신이 먼저 하부인에게 대해 
그처럼, 

이익을 제공해야 하고 
또 상대를 존중해주어야 하고 
상대에 대해서 겸손한 태도를 갖추고 대해야 하고 
자신이 먼저 상대의 의사를 따르고 존중해주고 
상대를 귀찮게 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 이제 위 사례를 놓고 
이 문제를 적용해보자. 
여기에는 추가할 내용이 조금 더 있다고 본다. 

형제의 부모가 다음과 같은 사연을 하소연 한다. 

“형이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자 

자기가 과거에 동생에게 

도움을 주었던 얘기를 하면서 

돈을 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동생은 형이 원하는 돈의 

일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섭섭했는지 

앞으로 만나지 말자고 해서 

동생은 이후 잘 찾아 오지 않습니다. 


형제끼리 사이가 나빠지고, 

그것 때문에 
서로 방문을 안 하는 걸 보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우선 이런 사례에서 
결론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내용은 무엇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부모가 있고 형제 자매가 있고 
이들은 또 제 각각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노력한다. 

원칙적으로 각기 자신의 문제를 다 잘 해결하고 
잘 살아간다면 좋은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하나가 
생활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부딪힌다. 

이 때 그것을 그 혼자서만 독립적으로 다 해결하고 
다른 가족이나 이웃은 모두 외면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보아야 하는가. 

또는 반대의 극단으로 가서, 
어떤 이의 문제는 
다른 가족이나 이웃이 모두 다 해결해주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보아야 하는가. 


사실 이 양극단은 다 조금씩 문제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적절한 정도로 
서로 독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에서도, 
또 필요한 부분에서는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을 바람직한 것으로 보게 된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바람직한 관계라고 보게 된다. 

철저히 각기 다 고립하여 
자신의 문제는 다 제각각 독립적으로 
남을 결코 의존하지 말고 해결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은 그로부터 부담을 느끼지 않아서 좋을 것이지만, 
그 부담을 느끼지 않은 이도 역시 
그런 곤란에 부딪히면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극단으로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주위 다른 이들의 도움만을 바라고 요청한다면, 
주변 사람들은 그로 인해 매우 큰 부담을 느끼고 
힘들어하게 될 것이다. 

또 입장을 바꾸어 자신도 
그런 다른 이웃과 형제에 대해 매우 부담스럽게 
느끼면서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의미한다. 
여하튼 앞에서 보는 내용은 이 양 극단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의 판단은 
물론 어려울 수 있지만, 

결국 
적절한 정도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가운데 

또 적절한 정도에서는 
다른 이로부터 도움도 받고 
또 자신도 다른 이들을 도와 가면서 

그렇게 서로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 그런데 두번째 문제는 
도움을 주고 받을 때 

이것이 과연 
서로 법률적인 
의무를 지는 
계약관계인가.  

아니면,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선을 주고 받는 
관계인가가 문제된다. 


만일 형제나 이웃간에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가 
서로 의무를 지는 쌍무적 대가적 견연적 법률관계라고 한다면, 

A가 B에게 과거에 500만원의 도움을 주는 것은 
나중에 B가 
형편이 좋아지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반환할 것을 조건으로 

서로 일정한 상응한 대가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쌍무적 관계 ] 


그리고 
처음 A가 B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과  
나중에 
B가 A에게 그에 상응한 도움을 주는 일은  
서로 함께 묶여 있는 것임을 의미한다. [ 견연적 관계 ] 

그래서 위 관계에서 
B는 상대 A가 형편이 어려워지거나 B의 형편이 좋아지는 
일정 시기가 되면 
각기 서로 받은 내용을 상응한 정도로 
상대에게 반환해야만 하는 
법률적의무를 지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은 일의 성격이 그렇지 않고, 
서로가 그저 선한 뜻으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또 미래의 반환 의무를 상대에게 지우지 않고 
그저 상대를 위해 도운 관계라고 한다면, 
그런 관계는 일단 떠나게 된다. 

이런 경우 그런 선을 행한 쪽은 
자신이 어떤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도움을 받은 쪽에 대해 
그 댓가를 다시 돌려주기를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그런 기대를 전제로 하고 
어떤 도움을 준 것이라면, 
그것은 장삿꾼의 거래와 같은 실질을 갖는 것이고 

또 좀 더 엄격하게 말하면 
앞에서 말한 법률적 쌍무적 견연적 계약관계로서
위 내용들을 생각한 것이 된다. 

그리고 정말 그 관계가 
만일 법률적 관계라면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증거보전을 위해 문서로도 남기고 
나중에 상대가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그것을 요구하고 
그래도 상대가 이행하지 않으면 
그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배신감을 느끼는 동시에 
다른 구제수단을 동원하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위 사례에서 
처음 형이 동생을 도왔을 때 
이 유형 가운데 
어떤 마음으로 도왔는가가 먼저 문제된다. 

또 나중에 도움을 거꾸로 받으려고 하였을 당시에도 
과거에 자신이 도운 일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자신이 동생에게 그런 도움을 요청했는가가 문제된다. 

원래 가장 바람직한 관계였다면 

형이 동생을 처음 도왔을 때 
그런 댓가를 나중에 자신에게 반환할 것을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고 
그저 동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동생을 도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시일이 지나, 
자신이 상황이 어려워져 
거꾸로 동생에게 도움을 바라게 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과거의 자신의 도움을 가지고 
( 그것을 서로 관련지어 묶어서 )
이제 그에 대한 보답이나 대가 관계로서 
동생의 도움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어려우니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은 하지만, 
과거에 자신이 도왔던 일과는 관계를 지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동생이 이번에 자신을 돕는가 안 돕는가는 
오로지 동생의 일방적인 선의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동생이 좋은 뜻을 갖고 있으면 
형편에 맞게 자신을 도와주면 좋고 
도와주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갖고 도움을 요청했어야 한다고 본다. 

즉 이런 경우는 비록 상황이 어려워 
도움을 상대에게 요청은 하지만, 

그것에 대해 과도한 기대는 하지 않는 입장이 된다.

말 그대로 상대가 자신을 도와주면 
그것으로 매우 고마운 일이지만, 

그러나 도와주지 않는다 해도 
섭섭하지는 않다는 마음상태가 된다.

여기에는 다음의 심리가 작용한다. 

상대에게 어떤 기대를 갖고 있으면, 
그 기대를 상대가 충족시켜 주지 않으면 
그 기대를 가진 만큼 
자신이 상대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된다. 

때로는 그 섭섭한 마음 만큼 
분노와 슬픔 억울함까지도 느끼게 된다. 

심하면 상대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바탕으로 
상대를 해치려는 마음까지도 갖기 쉽다. 

이것이 상대에 대해 갖는 기대에 대한 부작용이다. 


이 경우를 다른 경우로 놓고 생각해보자. 

자신이 차비가 없어
길 가에서 자신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저 차비를 구걸하는 입장이었다고 가정해보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과거에 한 번도 그런 도움을 베풀어 준적도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같이 바쁘고 
또 가난한 사람이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자신을 도와주는 이는 없다. 

이러한 경우는 위와는 조금 다른 심리상태가 된다. 

즉 상황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상대에 대해 섭섭함이나 분노를 느낄 정도까지는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차이는 자신이 도움을 상대에게 요청할 때 
자신이 갖는 마음 상태에 따른 차이다. 

자신이 상대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의존을 하게 되면, 
그런 기대를 갖는 만큼 
그 기대를 상대가 충족해주지 못하면, 
그에 비례하여 
자신의 슬픔, 분노, 섭섭함 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 형이 동생에게 느끼는 섭섭함은 
위와 같은 여러 조건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자신이 과거에 동생을 도왔으니 
그것이 꼭 법률적 대가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대가관계나 은혜를 갚는 차원에서라도  
이제는 동생이 자신을 도와주어야 한다고도 생각도 되고 
또 동생이 자신을 도와주리라고 상당히 기대하고 
의존한 마음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 마음 상태에서 상대에게 도움을 구하였고 
비록 동생이 약간은 도움을 주었지만,  
그 기대에 충족할 만큼 도움을 받지 못하니, 
그에 비례하여 
섭섭함과 원망 미움 분노 등이 싹트게 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차라리 이런 관계였다면, 
그것은 남남이 법률적인 관계로 만나 
계약을 맺고 도움을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럴 때는 그렇게 기대도 하지 않고 
또 기대에 상대가 부응하지 않으면 
법률적인 수단을 통해 구제를 요청할 지언정 
자신만 속으로 
상대에 대한 미움을 갖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에서 
처음 형이 취한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문제점이 발견된다. 

따라서 이 문제를 형 입장에서 해결하려면, 
위 둘 가운데 어느 입장인가를 자신이 
분명히 정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뒤의 선의의 입장이었다면,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정리해야 한다. 

즉 자신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왔던 것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다음 동생의 도움을 바랬을 때는 
어떤 기대를 갖지 않고 요청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무방하고 괜찮다.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 
동생만 잘 살면 괜찮다. 이런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로 동생이 상황에 맞춰서 
요구한 반절이나 보내 주었다. 
이것만으로도 정말 고맙다. 
이런 마음 상태를 되찾아야 한다고 본다. 


한편 동생도 형의 입장에 준해 
똑같은 내용을 말할 수 있다고 본다. 

법률적 관계에 준해서 생각했다면 
그에 상응하여 처음 상황에 비례하여 
자신이 바뀐 상황에 적절한 정도로 
대가를 반환했어야 할 것이다. 

또 선의를 주고 받는 관계였다고 할 때에도 같다. 

자신이 과거에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은혜를 입은 것인데 
그 은혜를 잊어 먹고 무시하면 당연히 안된다. 

전혀 그런 은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주변에 살아가는 이웃이 
어려운 상황에 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상대는 자신의 가족이기도 하고, 
또 과거에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을 준 가족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어려울 때 상대가 어려움을 극복할 방안을 찾고 
여러가지 물심 양면으로 도움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저 상대가 요구하는 대로 
무조건 제공한다는 차원보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하면 
상대가 좋은 상태가 될 것인지를 궁리하여 
그 방안을 찾아 노력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한편, 자신의 경제적 사정이 안 좋아서 
상대가 요구하는 만큼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말이나 행위 등 다른 것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던지 상대를 어려운 상황에서 
도와주려는 진정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했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사실 아무리 법률적인 관계로 부채를 부담해도 
부채를 갚아낼 여력이 없다면 
법률적으로도 이를 강제할 도리는 없다. 

채무자가 파산 상태인데 
빚을 갚아내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빚을 갚을 방안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법률관계도 그러하듯, 

은혜를 주고 받는 관계에서도 
과거에 은혜를 베푼 쪽이 
이제 상황이 어려워져 
도움을 요청해도 

자신이 도저히 상대를 도울 상황이 아니라면 
도울 방안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수단을 경제적인 수단에 한정하지 않는다면, 
대신 그 은혜를 갚을 방안은 
다른 방안으로 무수히 찾아낼 수 있다고 본다. 

얼굴표정도 밝게해 상대를 사랑스런 말로 대하고, 
다른 경제적 지원을 해줄 만한 사람을 
자신이 찾아 보기도 하고, 
또는 수익성이 좋은 사업을 찾아 보기도 하고 
또는 몸으로 일을 도와줄 수도 있고 
... 등등이다. 

여하튼 이러이러한 내용이 
어려움에 처한 다른 이웃 형제를 대할 때 
취해야 마땅한 내용이다. 

특히 그 상대가 자신이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준 상대라면 
지금 상황이 바뀌고 입장이 바뀌었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할 것이다. 



○ 그 다음은 이들의 사이에 있는 
부모의 입장이다. 

부모는 역시 앞과 같은 상태 가운데 
자신의 자식 형제 자매들이 
서로 선의의 관계로 
서로 돕고 화목하게 지내는 관계가 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방편을 그 상황에 맞게 
잘 찾아내야 한다. 

자칫 다 성장하여
독립한 형제들을 상대로 

이런 내용을 놓고 잘잘못을 따지고 '
시시비비를 가리며
훈계하거나 
비난하면, 
오히려 부모 자식간의 관계마저도 
이로 인해 악화될 수 있다. 

때로는 그저 화해할 분위기만 만들어주고 
힌트만 주고 
모른 척하고 지내는 것도 
좋을 수 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서로 어려울 때 
상대가 자신을 도와주었던 
그런 일들을 기억나게 도움을 주는 것도 한 방편이다. 

동생에게는 

어릴 때 형이 동생이 다른 친구들에게 얻어 맞고  
들어 올 때 
형이 널 도와 싸워 주지 않았니, 

또는 형에게는 

동생이 이러이러한 때 
형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았니

하는 등으로 
과거에 서로 사이가 좋았던 일들을 
떠올릴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본다. 

결국 부모는 형제자매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게 될 
방편을 찾아내는 데 골몰해야 한다고 본다. 


그 전에 
부모가 
각기 대립해 있는 이를  만날 때는


그 상대방의 대리인 또는 변호인이 되어 
상대에게 말하거나 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즉 
부모가 형을 만날 때는 
부모가 동생의 입장을 변호하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되고, 

또 부모가 동생을 만날 때는 
부모가 형의 입장을 변호하려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모두가 서로 불화하는 
관계로 된다. 

오히려 그 반대의 입장을 취해 
상대를 만날 때마다, 
상대와 같은 편이 된 가운데 
그 바탕에서 부모가 의도하는 화목한 관계로 
이끌려는 방편을 찾아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형을 만날 때는 
형을 입장을 옹호하고 두둔한 가운데 
그런 가운데 형과 동일한 심정이 된 다음 

그렇지만 동생에게 미움과 원망을 버리고 용서와 사랑의 마음을 
일으킬 계기나 방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생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동생을 만나면 다시 동생의 입장을 
옹호하고 두둔한 가운데 
그런 가운데 동생과  동일한 심정이 된 다음 

그렇지만 형에게 미움과 원망을 버리고 용서와 사랑의 마음을 
일으킬 계기나 방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서로 
갖고 있는 잘못을 스스로 느끼고 반성 참회하게 이끌고 
앞으로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나 방편을 마련해주는 것이 
부모가 취할 도리라고 본다.  


[output] from http://thegood007.tistory.com/1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