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간_장수

시간의 의미차원

?zzzzzzzz

▣[제목]▣

●시간의 의미차원

○ 실재의 시간은 얻을 수 없다.

∞∽ ghpt-00980.htm ◀앞 【목록】 뒤▶ ghpt-01000.htm ∽∞

♣본문♣

[ 구 목차 요약]

]] ●> 시간

]]] ♡> 의의

]]]] ♥> 시간의 개념

자세한 논술은 현상의 진리 참고

현상이 변화하는 것을 사람이 알게된 후 현상의 변화가 있게되는 영역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게 됨

● 시간의 개념요소

- 변화

- 변화의 인식

- 기억

- 기준 변화 단위

● 시간의 종류

]]]]] □> 전제

]]]]]] ■> 인식능력의 발달

1차 정신- 3차정신- 6차정신

감각- 1차 의미인식- 기억, 재생, 추리, 비교 -시간관념의 생성

]]]]]] ■> 현상의 변화

변화전 모습- 변화후 모습

두 대상의 변화의 비교

한 대상- 기준- 시간 자체 또는 시간의 시점(始點), 종점(終點)의 요소

다른 대상- 기준이 되는 대상의 변화(시간)속에 함께 존재하는 내용물

]]]] ♥> 구별 개념

]]]]] □> 공간

인식(1차인식)이 맺히는 영역(외부, 내부)으로 추론 되는 곳

]]]]] □> 현상

인식(1차인식)의 내용

]]]]] □> 변화

정신

]]]]] □> 시간

정신이 설정하는 변화의 인식(변화)이 맺히는 영역으로 추론되는 것

--------- 990

]]]] ♥> 시간의 종류

]]]]] □> 기준

]]]]]] ■> 객관적 시간- 변화 영역판단의 기준이 되는 현상의 변화

]]]]]]] △> 다수인간의 인식대상이 되는 변화

]]]]]]]] ▲> 일회적인 변화 - 예, 화재발생

]]]]]]]] ▲> 반복적 불규칙적 변화 - 예, 나무가 자라는 변화

]]]]]]]] ▲> 반복적 규칙적 변화 - 해의 움직임, 달의 변화- 객관적 상대적 시간(기준

]]]]]]]] ▲> 규칙적 변화와 규칙적 변화간의 관계의 규칙성

-객관적 절대적 시간(기준)

--시계추- 해의 움직임

- 인간 사이에서만 타생명체의 절대성

]]]]]]] △> 개별 주체의 인식대상만으로서의 변화

]]]]]]]] ▲> 주체내부의 인식 변화


]]]] ♥> 시간의 양과 변화의 양

]]]]] □> 변화의 양

일정 시간단위내 변화의 횟수

]]]]] □> 시간의 양

]]]]]] ■> 단위변화의 횟수

]]]]]]] △> 기준 변화단위의 설정과 비교변화의 시간량 변화

빛의 이동거리 기준(속도 고정)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에 따른 시간량 변화

다른 기준 적용시는 또 다른 시간량

( 해의 회전)


]]]] ♥> 시간양 판단의 상대성

]]]]] □> 일정시간내 비교변화의 많은 변화

]]]]] □> 일정시간내 적은 변화, - 비교 변화 설정에 따라

]]]]] □> 일정변화( 이것이 기준일 때)의 시간의 빠른 흐름 - 일정시간 (기준) 비교변화의 느림( 적은 변화)

]]]]] □> 일정변화( 이것이 기준일 때)의 시간의 느린 흐름 - 일정시간 (기준) 비교변화의 빠름( 많은 변화)

]]]]] □> 희망 개입에 의한 시간흐름의 변화

빨리 흐르길 바랄 때( 일정량의 변화가 실현되길) - 불 충족 - 시간이 느리다.,안간다. _ 비교변화의 느림, 희망에 비해 아직 적은 변화

=
===================


● 시간에 대해 살펴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간의 논의 이유>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많이 말한다. 시간은 소중하다.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할 수가 없다. 좀 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시간을 돌려 좋았던 과거로 가고 싶다. 아니면 과거로 돌아가 다시 잘 해보고 싶다.

시간을 앞질러 미래로 가고 싶다.

주어진 시간 동안 행복하고 의미있게 살고 싶다.

또는 내 삶의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

심지어 난 영원한 시간동안 살고 싶다. 영원한 시간을 갖고 싶다. 이런 식으로 여러 희망을 갖는다. 그래서 선한 행복을 살아가고자 할 때 이런 시간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해야 하는가가 문제된다.

● 시간에 대해 갖는 사람들의 희망의 내용은 무엇인가? <시간과 관련된 희망의 내용>

사람은 시간에 대한 관념을 가진 상태에서, 여러 희망을 갖는다. 지금 시각이 얼마나 되었는지 알고 싶어 하기도 하고, 시간 자체가 무엇인지, 시간의 처음과 끝이 있는지 알고 싶어 하기도 하고, 또는 주어진 삶이나 활동 시간[기간]을 늘려 갖고자 하기도 한다. 심지어, 시간을 자유로이 과거나 미래로 돌릴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하고, 시간을 천천히 갔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고, 반대로 빨리 갔으면 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또 단지 과거 시간대나 미래의 시간대의 일을 알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아예, 앞 시간대 뒷 시간대로 자유로이 자신이 이동해 갈 수 있게 되기를 꿈꾸기도 한다. 이들을 사람이 시간과 관련하여 갖는 희망들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시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 시간이란 무엇인가? < 시간의 개념>

시간과 공간은 물리현상을 이해할 때 가장 기본관념이 된다. 그러나 정확히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 것인가는 분명하지는 않다. 여기서는 행복과 관련하여 논의되는 범위에서만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대부분의 관념이 그렇듯, 그 관념을 가질 때 그 관념이 가리키는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가 문제된다. 예를 들어 달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대부분 그 달로 가리키는 내용을 서로 가리켜 바라보게 함으로써 저것이 달이다라고 확인시켜 줄 수 있다. 돌, 나무 등은 만져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관념이 이렇게 가리키는 내용을 감각을 통해 확인시켜 줄 수 있지는 않다.

평화, 사랑, 정의 등과 같은 추상관념도 그렇다. 여기 시간이란 관념은 물리 과학 등에서 가장 기본개념으로 사용되지만, 그러나 그처럼 감각으로 직접 확인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우리가 시간이라는 말이나 관념으로 나타내고 가리키는 내용이 무엇인가는 나무나 돌과 같은 것과는 달리 감각을 통해 그 말이 가리키는 내용을 곧바로 얻기는 어렵다.

사정이 이런 관계로 명확히 시간이 무엇이라고 정의하기 곤란해지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많이 흘러간 것 같다”거나 “시간이 잘 가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시간에 대해 느끼고 감각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떤 내용을 느끼고 생각하고 또 그 가운데 무엇을 시간이라는 말로 가리키는가를 반성해 보는 것이 본 문제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 서로 다른 범주의 문제

■ 언어내용-감각내용-관념내용-실재내용-실체내용

또 하나 무엇의 정체를 밝히고자 할 때는 서로 구별해야 할 다른 범주나 차원의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 시간은 영어나 불어 독일어로는 무엇이라 하는가? 이렇게 물을 때는 언어적인 측면에서 그 정체를 묻는 차원이다. 시간은 영어로는 time이라고 한다 이런 답이 그 내용이라 할 것이다.

□ 한편 무엇의 정체를 밝힐 때 감각한 내용이나 그에 대한 관념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물을 때도 있다.

우선 이 가운데 감각한 내용은 감각기관을 통해 얻는 내용이다. 눈, 코, 귀, 등으로 얻게 되는 내용을 말한다. 관념 내용은 감각내용과는 구별되지만, 여하튼 우리 마음에서 얻는 내용이다.

□ 이들 감각내용과 관념내용은 예를 들어 ‘나무가 무엇인가’ 물을 때 다음과 같이 구별된다.

낮에 나무 앞에서 눈을 떠서 바라보게 된 모습, 그리고 눈을 감으면 없어지는 모습 가운데 나무라는 관념이 가리킬만한 부분이 감각한 내용으로서 나무라면 나무다.

그러나 관념으로서 나무는 이와는 조금 다르다. 비록 나무가 없고 빛이 없어도 눈을 감아도 머리 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 어떤 어렴픗한 형체가 무언가 있다면 그것이 나무의 관념이다.

이처럼 '언어내용'이나 '감각내용' '관념내용'과 같은 범주의 내용을 물을 때는 그것은 우리가 현상에서 얻는 내용을 묻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모두 현상적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도 이런 범주에서 물을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앞에서 보았듯 시간은 눈, 코, 귀 등으로 직접 얻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감각내용으로 시간에 대해 곧바로 1대 1로 대응시켜 제시할 내용은 조금 모호해진다.

그러나 시간은 생각등을 할 수 있는 내용이고 또 마음 속에 막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그 내용을 묻는다면 이는 시간을 관념차원에서 어떤 관념내용이 시간인가를 묻는 것이다.

□ 그런데 무엇의 정체를 알고자 할 때는 더 다른 차원의 의문을 갖게끔 된다.

그래서 그것도 살펴봐야 한다.

이제 나무의 문제로 돌아가서 이를 살펴보자. 우선 우리의 마음에서 얻어 갖는 관념, 감각내용으로서, 현상적인 나무가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기초로 이것과는 다른 차원의 나무의 정체를 물을 수 있다. 즉 도대체 우리 마음 밖에 실재로 무엇이 있기에, 내 마음에 그런 나무의 모습에 대한 감각내용, 관념내용이 맺히는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나무가 무엇인가 물을 수 있다.

어떤 것을 그것이 객관적으로 무엇인가? 실재하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 이런 나무에 대한 감각을 일으키는가를 묻는다면, 바로 어떤 것의 정체를 실재 내용의 차원에서 묻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시간의 실재내용이 무엇인가라며 그 정체를 물어 볼 수도 있다.

□ 또 다른 차원에서 또 나무의 정체를 물을 수 있다.

우리는 나무를 낮에 볼 때와, 밤에 볼 때, 선글래스를 끼고 볼 때 이런 식으로 각기 다른 상황에서 대하면 나무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의문이 나타나게 된다. 이 수많은 나무의 모습 가운데 정말 진짜 나무의 대표의 모습은 무엇일까? 사실 이 문제는 답하기 곤란하다. 모두가 일시적이고 그 상황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이렇게 시시 때때 조건마다 달라지지만, 어떤 골격은 일정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비록 매번 다르지만, 나무는 나무고 물은 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복해서 경험하면서, 비록 매번 다르지만 일정한 어떤 골격을 갖고 파악되는 데에는 그 각각의 다른 모습 속에 일정한 변치 않는 뼈대로서 본체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라고 추리하게 된다. 그것은 앞에서 현상의 모습이 매번 다르고 일시적이라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어떤 모습, 성질이라는 점에서 확연히 다른 지위를 갖는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본체나 실체로 관념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차원에서 다음 의문이 생겨난다. 현상적인 나무를 그렇게 나타나게 하는 나무의 본체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무언가 영원히 변치 않고 고정되어 있는 그런 내용을 찾는 질문이다. 이런 점에서 앞의 질문과는 또 성격이 조금 다르다..앞에서는 그저 내 마음 밖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할 것의 내용을 물었다면, 이번 질문은 다시 변하지 않고 고정된 영원불변한 내용, 성질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관념하는 시간도 똑같이 물을 수 있다. 시간의 본체, 실체, 본질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모두 이런 차원에서 질문하는 내용이다.

□ 이처럼 여러 가지 다른 차원으로 무엇의 정체를 물을 수 있다. 그 각각이 조금씩 서로 다른 내용을 묻는다는 것을 혼동하면 안 된다. 왜냐면 나무가 언어내용의 차원에서 두 글자라고 해서 진짜 감각하는 나무가 두 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머리 속에 나무가 떠오른다고 해서 눈을 뜨면 정말 나무 모습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실재내용 실체의 존부문제도 다 마찬가지다. 우선 이런 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우리가 알고자 하는 대상의 정체자체를 혼동하게 된다. .

○ 실재내용과 실체의 문제

우선 모든 관념 모든 감각내용과 관련하여 의문이 될 만한 모든 주제에 있어서 실재내용과 실체의 존부에 대한 답은 같다.

□ 우리의 주관과 관계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내용은 그 무엇에 관한 것이든 우리는 얻을 수 없다. 무언가 실재내용이 이러이러하게 있다고 추리하던 아예 없다고 추리하던 그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누구도 어느 입장에서도 그 실재 내용 자체를 얻을 수는 없다. 불교에서 공(空)하다 얻을 수 없다는 말은 곧 이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것도 예외없이 그렇다. 앞에서도 말했듯 그 실재내용은 이런 내용이어야 한다고 추리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내용도 얻을 수 없기에 그 추리는 추리일 뿐 공허한 것이다.

□ 또 하나 실체의 존부 문제와 관련해서 그 어떤 것도 그런 영원불변한 실체는 없다. 이 역시 시간의 문제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공통한다.

그래서 실재내용으로서 시간이 무엇인가. 시간의 실체나 영원불변한 본질은 무엇인가의 질문에 대한 답은 다른 것들과 같다. 그 실재내용은 얻을 수 없고 그 실체는 없다.

실재내용을 얻지 못하므로 자신의 주관을 떠나 시간이란 객관적으로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이에 대해 이분법적인 판단을 할 수 없고 또 단정할 수 없다. 즉 그것이 있다고도 단정할 수 없고, 없다고도 단정할 수 없고, 같다고도 다르다고도, -이다고도 -이 아니다고도 할 수 없다. 기타 모든 판단이 다 같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그 내용을 얻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상상이나 추리, 그에 대한 주장, 말 자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말은 할 수 있지만, 그 말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증거를 하나도 얻어 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실 그 말은 거짓이라고도 할 수 없고 옳다고도 할 수 없는 공허한 빈 말이 되고 만다.

유감스럽지만 시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다. 예를 들어 앞에서 본 나무에 대한 질문도 그 실재내용과 실체가 무엇인가를 물으면 답은 같다. 나무 뿐만 아니라, 사람도 같다. 자신도 남도 다 같다. 그러나 편한 점은 이후 모든 것이 다 그렇다는 점이 편하다면 편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논의할 여러 문제들도 각기 각 차원을 논의할 것이지만, 이점은 같다. 즉 무언가의 실재내용에 대해서는 모두 다 얻을 수 없고 공하다. 그 영원불변한 실체는 없다라는 같은 답을 하게된다.

남은 과제는 우리가 현상에서 얻는 관념으로 무엇을 도대체 시간이라 하고 문제삼는가 이 정도의 문제만 따라서 남게 된다. 왜냐하면 못 얻는 것을 가지고 추리나 상상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사변 철학이 되거나, 상상이 풍부한 소설가의 소설이나 그럴 듯한 추리소설이 된다. 모두가 한번도 그 대상을 얻어 본 적도 없으면서 따라서 알지 못하면서도 그럴듯하게 상상해 추리하는 내용을 기술하는 것과도 같은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리나 상상이야 자유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 왜 어떤 것이나 그 객관적 실재내용을 얻지 못하는가? 또 왜 실체는 '없다'고 하는가가 문제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논의하는 것은 본 행복론의 범위 밖이다.

그러나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얻는 것은 일체가 우리의 마음에서 얻는 것이다. 지금 문제 삼는 실재내용은 그렇지 않은 그 무엇을 찾는 것이다. 어떤 주체도 그것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그런 사정에서 출발한다. 물론 누군가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을 비로소 검토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없고 또 그것은 그와 같은 사정으로 어떤 주체를 가정한다해도 본래 얻을 수도 없고 얻지도 못하기 때문에 얻지 못한다고 간단히 말할 수밖에 없다.

일반 과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저기 꽃이 붉게 보인다. 나도 그렇다 인정하고, 다른 이들도 모두 그렇다. 그러니 저 꽃은 객관적으로 붉은 것 아닌가? 그것은 이 문제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이는 모든이가 감각내용과 관념의 차원에서 엇비슷한 내용을 얻는다고 서로에게 보고한 것 뿐이기 때문이다. 즉 그 모든 이가 '각자 각 마음에서 얻은 내용이 모두 붉다'고 말한 것뿐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누구도 자신의 마음 밖의 꽃 그 자체의 실재 내용을 얻어서 그렇게 붉다고 말한 것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런 상태에서 실재내용을 직접 얻어온 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누군가 자신이 붉은 감각을 얻기에 그 꽃 자체는 붉은 것이다라는 주장 자체도 잘못이다. 왜 그런가, 자신의 눈으로 붉은 색을 보았다고 그 꽃이 붉다는 증거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재내용으로 찾는 꽃의 내용은 우리에게 붉은 색을 얻어 갖게 한 무엇이다. 그러면 그것의 실재내용자체가 붉은 색이 아닐 것 아닌가? 우리가 생물시간에 배우듯, 우리가 붉은 색을 얻는 과정에 대한 추리는 다음과 같다. 우선 빛이 그 대상과 관계하여 그 대상은 우리 눈까지 일정한 파장을 반사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시신경을 자극하여 최종적으로 우리의 뇌안의 신경세포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런 과정으로 마음에서 그런 색을 얻는다.. 적어도 과학은 그 과정을 이런 식으로 추리한다. 이런 추리를 기초로 하더라도, 다음 의문들을 해결할 수 없다. 우선 우리에게 붉은 색을 맺게 한 눈에서의 시신경 변화내용은 무엇인가? 또 그렇게 만든 어떤 파장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그 파장을 반사시킨 그런 실재하는 꽃은 또 무엇인가? 이처럼 하나하나 각각 추리된 것들의 실재내용들을 물어갈 때 우리가 얻은 감각내용을 모두 그에 대입시켜 ‘그것이 그것이다’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그 대상-파장-시신경-등이 각각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시신경의 흥분으로 최종적으로 얻는 붉은 색의 느낌이 앞의 대상과 동일한 내용이라고 추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파장을 발산시킨 것이 곧 그 파장이다는 추리가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 다시 실체는 왜 없다고 하는 문제도 같다. 매번 현상내 모습들이 조금 씩 다르기야 하다. 그러나 이들은 볼 때마다, 일정한 형체로 파악된다, 그런데 왜 그 안에 그렇게 모습을 나타나게 하는 영원불변한 뼈대나 본체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또 심지어 실재내용은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론 왜 영원불변한 실체의 문제에 있어서는 '없다'고 단정하여 말할 수 있는가.

사실 이 문제 역시 누군가 실체가 있다라고 주장한다면, 그런 그가 그렇게 있는 영원불변한 어떤 내용을 하나라도 얻어 가져오고 나서야 논의할 실익이 있는 문제이다.

한편 이 문제는 앞의 실재내용의 문제와 사정이 또 다르다. 없음을 증명하는 문제는 별도로 논의하여할 문제이지만, 영원불변한 실체의 존부 문제는 그렇게 단순히 없다고 결론짓고 넘어가도 어느 경우에서도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영원불변한 것이 실제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변화를 통해 그 내용을 바꾸거나, 자신이 그 내용을 새삼 얻거나 잃거나 할 성격이 처음부터 아님을 인정하고 출발한다. 그렇게 자신이 바꾸거나 얻거나 할 내용이 본래 아니라면, 그것을 논의할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우리가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또 반대로 그것은 영원불변한 그 무엇은 적어도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 경우는 변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므로, 이 문제는 논의할 실익이 처음부터 원래 없는 문제다. 그러면 사실은 무슨 문제가 남는가? 단지 지적 호기심 또는 지적 의문을 해결하는 차원에서만 논의할 가치가 있게 된다.

이 지적 호기심 차원에서 실체의 있고 없음의 문제를 밝힐 때는 그 논의 대상이 되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 없기에 그저 없다라고 판단하고 인정하는 것 외에는 '직접적 증명방법'은 본래 없다. 실재내용의 차원에서 또는 현상내용들의 차원에서 모든 시간대에 모든 영역을 다 뒤져보고 뒤져보니 ‘찾는 그것은 없다’라는 식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왜 없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 사정 때문이다. 우선 우리는 추리나 관념으로 어떤 현상을 현상 그 모습으로 나타나게 한 어떤 것의 영원불변한 실체라는 관념을 만들어 갖는다. 그 다음 그 관념을 기초로, ‘그 관념에 해당하는 무엇’이 정말 있는가 없는가를 다시 문제삼고 따지는 것이다. 그런데 앞과 같이 실증적으로 경험적으로 모든 영역 시간을 다 뒤져 밝힐 수는 없다. 그 없음의 증명과정에서 있을 때는 이러이러한데 없기 때문에 이러이러하다. 따라서 없다는 식으로 논증할 수도 없다. 이미 논증과정에서 있을 때는 이러이러하다는 논증이 그 없음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근거없는 주장을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의 없음의 증명은 그 관념이 관념으로서 갖는 내용과 성격이 우리가 얻는 현상과 갖는 관계로 인해 자체적으로 깨짐[귀류논증]을 통해서, 그 관념에 해당하는 것은 일체 어느 곳에서도 없음을 단정할 수 있게 된다. 이 이상의 구체적인 논의는 별도의 장에서 논의할 문제이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

++ 원문끝 93.09.04 ++

● {최초 주제도입으로 의문제기- 논의할 주제를 처음 제시 하는 부분}

○ {간단한 결론제시-함축적 결론,격언적 제시, 부분}

▼ {독자나 상대방 입장에서 주제가 도출되는 내용}

▽ {독자나 상대방 입장에서 주제가 도출되는 자세한 과정 내용}

▲ {주제 결론의 객관적인 장단점}

△ {사례나 비유 이야기 형식의 글}

■ {주제에 대한 부가적 설명 도입}

□ {주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의 실질적 내용}

★ {논증 또는 비판하고자 하는 내용}

☆ {실질적 논증 부분}

∴ {최종 결론}

[자세한설명] {백과사전이나 일반 논문 내용} [설명끝]

[주석] {인용한 책 참고 논문 등} [주석끝]

01-시간-예측예언의시간


[제목: 시간의 흐름 by 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Ω♠문서정보♠Ω

™[작성자]™

◑[작성일]◐

♨[수정내역]♨ N:\G_01hwp\G\3r\r980.hwp +++ 원문 93.09.04 ++ // http://blog.paran.com/thegood007/45676926 //
+ \G_01hwp\G\3r\r990.hwp +++ 원문 93.09.04 ++

▩[ 디스크 ]▩ DISK: \G\03\ghpt\ghpt-00990.htm

ж[ 웹 ]ж web: http://blog.paran.com/thegood007/18318505

↔[ 관련문서]↔

{!-- 관련 문서 링크--}

Ш[ 관련 문서 인용 부분 ]Ш

ㅹ[ 코멘트 등 정리 내역]ㅹ

Mun Tokyun 2011-09-01 오후 12:50
시간을 적당히 때우고 싶다...
시간을 병에 담아 저축해 두고 싶다.^^
잠깐만 시간을 빌리고 싶다..잠깐만 시간을 내주세용~~
앗 타임!! 잠깐만,,중지..스톱...

§ψ맨위ψ§

┒§ ghpt-00980.htm ◀앞 【목록】 뒤▶ ghpt-01000.htm §┏

zzzzzzzz

'시간_장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과 관련된 희망의 종류  (3) 2011.09.01
시간에 관한 앞으로 생각할 방향  (7) 2011.06.30
시간의 현상적의미 2  (1) 2007.03.26
시간의 현상적 의미  (0) 2007.03.26
시간의 종류  (1) 2007.03.26